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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빛나라2007.05.31 16:34조회 수 2632댓글 0





 제목 : 권정생 할아버지


2007년 5월 17일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다음 날인 5월 18일 신문에 나와서 외우기가 쉽다.

오늘 5/18 민주화항쟁은 잊을 수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나는 슬픔 반 기쁨 반이다.

사람이 살아있다 죽는 것은 그냥 슬프기 때문에 슬프고

희망은 잃어가고 한만 남은 세상을 벗어나셨기 때문에 기쁘다.

70세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잘 가신 것이다.

너무 많지도 않고 아쉽지도 않은 나이가 70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계속 살아계신다.

살아계실 때 할아버지의 삶도 남기고 다른 사람들의 삶도 글로 남기셨다.

그것을 읽으면 우리 마음 속에 그분들이 계속 되살아난다.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가까운 분들의 이야기랑 같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눈은 맑고 따뜻하시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시고

아주 작아도 다 보고 무엇이나 있는 그대로 보신다.

할아버지의 마음은 고생을 많이 하셨어도 찌부러지지 않아

아무도 몰라주는 사람들의 마음도 다 알아차린다.

할아버지는 하느님을 가슴 깊이 꼭 전심으로 모시고

생명있는 모든 것은 다 귀하게 여기시며

세상에 생겨난 것은 무엇이나 쓸모없는 것이 없다 하신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면

아무 생각없이 모르고 지내다가 그러면 안되고

뭐든지 함부로 여기고 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가난하고 항시 어렵게 당하기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없이 한없이 하신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이 저절로 나게 슬프지만 

불쌍하기보다는 그분들의 삶 속에 무언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들어있다.

사람이 욕심부리지 않고 가난하게 살면 세상의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도 하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살아서 해주시던 여러 이야기가 생각난다.

홀로 키우는 손주 손잡고 북녘을 바라보는 할머니

아, 이 땅의 역사를 몸에 감고 아무런 원망도 없이 그저 살아가는 몽실언니

온 몸을 녹여 민들레의 살이 되고싶은 강아지똥

풀밭에 우두커니 앉아 다만 평화로운 들판만 바라보는 벙어리 소

머슴짓만 하다가 먼산 바라보기가 된 돌탭이 아재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서 오래 오래 함께 살고싶은 아기 정생이!

한티재 하늘 아래 살던 사람들.....


“천지가 뒤흔들리고 난리가 나도 세상에는 아기가 끊임없이 태어났다.

조선의 골짝골짝마다 이렇게 태어나는 아기 때문에

모질게 슬픈 일을 겪으면서도 조선은 망하지 않았다.

그 아기들은 자라서 어매가 되고 아배가 되고 할매, 할배가 되었다.

참꽃이랑 산앵두꽃이 피어나는 들길로 그 애들이 손잡고 노래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돌탭이 아재’ 시가 좋다.

“아재요, 아재요, 한많은 아재요

같은 하늘 같은 해 아래 태어나

아재는 주먹도 크고

아재는 발도 크고

아재는 키도 크고 다리도 길고


그런데 아재요, 돌탭이 아재요,

충청도 낯선 땅에서 머슴살이 할 때

쥔 아주머니가 꾹꾹 담아주던 찬밥 한 그릇이

아재가 태어나서 가장 따습게 먹어 본 밥이라고

아재는 허기져 소나무 그늘에 쉴 때

언제나 그 충청도 아주머니 생각을 했고


마을엔 흉도 많아라

아재는 말도 안 하는 멍청이 영감이라고

아재는 고집불통 홀애비 머슴이라고

천생 머슴짓만 하다가 고꾸라질 팔자라고

아재가 해온 나무는 어설프고 헤프다고


아재는 귀막고 눈감고

아재는 벙어리가 되고 싶었지

아재는 먼 산 바래기가 되고 싶었지

아재는 혼자 있으면 차라리 외롭지 않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살아계실 때처럼

이 땅의 아재들 옆에 가만히 앉아 계신다.

그리고 세상이 슬픈 건 돌탭이 아재 때문이 아니라

아재처럼 살지 않은 것 때문이라고 말하시는 것같다.


할아버지, 가시는 길에 지금 한창인 찔레꽃 보셔요!


신영복 선생님 글 하나 (by 빛나라) 아름다운 자연향기 가득 담아... (by 금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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