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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사과 사이소!

파랑새2006.09.19 13:17조회 수 2204댓글 0

'어린이와도서관' 다음 카페에서 옮겼습니다.

 

한가위 사과 사이소!


한 친구가 있습니다. 대학을 나오고도 꽤 오래 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뒤늦게 장가를 가고 또 아이 둘을 얻은 지금 그 친구는 아버지 사과밭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올해로 만 5년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한 세 달 전까지만 해도 친구의 얼굴에 맑은 기운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사과농사일이 너무 힘에 부쳤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1만 2천평 농사를 지난해까지 지었으니까요. 지금은 7천평 농사를 짓는데 무슨 까닭인지 요즘은 친구 얼굴이 맑아 보입니다. 친구 어머니조차도 '요즘은 애가 생기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니까요.


그 친구는 올해 제가 고향에 내려왔을 때 제게 무시로 차도 사 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밥도 사 준 친구입니다. 고향 내려와서 한 두 달 동안에는 제가 아무런 꿈도 없이 살 때였거든요. 사람답지 않게 살고 있을 때 이 친구 사과밭에 가서 일도 도우면서(기술이 없다보니 그저 가지치기한 나뭇가지를 모으거나 허드렛일을 돕는 수준이었습니다.) 사람꼴을 갖춰가기 시작했답니다. 그 덕에 어쩌면 빨리 어린이교육문고 작은나무를 열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는 서울에서 어린이교육문고(어린이도서관) 작은나무를 운영하다가 고향인 풍기로 올 1월에 내려와 지난 4월에 고향에서 다시 어린이교육문고(어린이도서관) 작은나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내 아이만 셋을 두었습니다. 장가도 제때 갔고요.^^.


지난 8월에는 친구와 같이 원주에 있는 상지대학교에서 ‘친환경농업 입문과정’을 들었습니다. 함께 3일 동안 교육을 받으러 풍기와 원주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저농약 사과 농사를 짓고 있기는 하지만 깊은 철학은 없이 보이던 친구에게 조금의 빛이 들어가는 때였습니다.


그전부터 저랑 만나면 도시 소비자 직거래와 체험농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주고 받았습니다. 어떤 일을 결정하는 권한이 그 친구에게 있지 않기에 아직 겉으로 드러나는 그 무엇인가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이제까지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하지 않았던 일을 저와 함께 벌이려 합니다. 무엇이냐 하면 10월 14일(흙날)부터 10월 29일(쇠날) ‘사과밭에서 여는 가을밤의 소리나눔’이라는 행사입니다. ‘사과밭, 소리를 담다!’라는 제목도 제가 붙여 보았습니다. 무대도 없고(맨땅), 조명도 없고(달빛, 별빛, 흐리면 밤의 빛), 마이크와 스피커도 없는(신이 우리에게 선물해 준 오롯한 자기 목소리) 공연입니다. 하루에 100분만 예약 신청을 받아 행사를 열어볼 작정입니다. 아무래도 사람이 너무 많으면 그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일이 쉽지 않고, 또 소리를 제대로 듣을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그리 하기로 하였습니다. 공연 시간은 저녁 7시부터 8시 30분까지입니다. 소리꾼도 초청하고(뜻이 맞고 하늘의 연이 닿는다면) 지역 주민들도 주눅듦 없이 한데 섞어 소리판을 짜 볼까 합니다.


어찌 말이 나와서 제가 사과 2000상자 직거래를 맡게 되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쪼록 제게 주어진 일이 ‘사과 2000상자 소비지와 직거래’입니다. 이 일을 잘 마무리해서 조금씩 맑은 기운이 내비치는 친구에게 그 기운이 쭉 이어질 수 있는 힘을 보태 주고 싶습니다.


참 그 친구가 어찌 농사를 짓는지 제가 잠깐만 얘기하겠습니다. 사과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지었는지도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풍기에서 어린이교육문고(어린이도서관) 작은나무 내부공사를 다 마치고 이제 문을 열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고생한 두 친구들과 함께(이 가운데 한 친구가 사과꽃농원지기입니다.) 저녁에 회를 먹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넘었는데도 그 친구는 온다는 말만 하고는 하염없이 늦어지는 것입니다. 한 두 시간 정도 늦게 횟집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 보았더니 바람 안 불 때 약을 쳐야 되어서 그리 늦었다고 말하더군요. 그 말 듣는 순간 전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도 좀 벼르고 벼른 약속이었는데 말입니다. 이 친구가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일 하는 통에 동네 이장님이 이 친구를 보면 이렇게 말한다고 하더군요. ‘이 사람아, 잠 좀 자세! 잠 좀 자!’ 11시쯤 횟집에 나타난 이 친구, 제가 다시 시킨 회 한 접시 후딱 먹어치우더니 벌통을 나르러 간다고 12시쯤 나가 버렸습니다. 지쳐 있는 낯빛이 틀림 없는데 오밤중에 벌통을 나른다는군요. 무슨 까닭 때문에 밤에 나른다고 하던데 그 말을 잊어 버렸습니다.


사실 전 사과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사과농사 짓는 일에 대해서는 더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런 열의와 정성으로 지은 사과가 꽤 괜찮은 사과일 거라는 믿음은 있습니다.(실지로 요즘 떨어진 사과들이 꽤 있어서 주워와 작은나무에서 뭔가 가공을 해 볼 요량인데, 흠 없는 것들도 많고 조금 상처 난 것들도 있기는 하지만 작은나무 아이들과 나눠 먹었는데 다들 맛있게잘 먹더군요. 저도 또한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러기에 부끄럼 없이 제가 그 사과를 팔 수 있다고 믿었고 덜컥 2000상자 직거래라는 일을 맡았습니다.


친구는 어제와 오늘 자꾸 저를 재촉합니다. 그런데 전 솔직히 걱정이 안 됩니다. 그리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알게 모르게 제 마음을 잡고 있으니까요. 농부는 열심히 농사 짓고 저는 열심히 팔고 소비자는 좋은 사과 여러 이웃들과 기분 좋게 나눠 먹는 이 일은 하늘에 있는 높은 분이 보기에도 틀림없는 예쁜 짓일 테니까요.


요즘은 이런 글 쓰다보면 말이 길어져서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길다고 짜증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내 몸에 달린 손가락이지만 그 손가락이 자판을 마구 두드리는 것을 저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과는 다음주 달날(월요일)부터 따서 주문과 함께 택배로 보낼 작정입니다. 살 만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아파트 같은 곳은 트럭에 한 200상자 싣고서 나가서도 팔려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9월 18일(달날)부터 9월 28일(나무날) 주문 받으면서 바로 보낼 요량이고요, 될 수 있으면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딴 그날 바로 바로 택배로 보낼 작정입니다. 늦어도 하루나 이틀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딴 지) 소비자들이 받을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이 우리 모두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글 읽으시면서 이 사람이 이런 사과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시면 그 분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주시면 좋겠고요, 아니면 한 상자 사서 선물 보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저씨들 같은 경우에는 처가에 추석 선물로 보내셔도 좋습니다. 처가에 마음 써주면 장인 장모님 좋아라 하실 것이고, 처남, 처제들과 아내도 좋아 할 것이고요 그 사과 키운 우리 친구도 좋아라 할 것이고 중간에서 거간 노릇한 저도 좋아라 할 것이고 하늘에 있는 높은 분도 좋아라 할 것입니다.


사과는 10키로그램이고요, 굵기에 따라 5만원, 6만원, 7만원짜리가 있습니다. 집에서 식구들끼리만 먹는 것보다 둘레 이웃들과 나눠 먹으면 틀림없이 제 값어치는 하리라 생각합니다. 뭐 추석 때 제사상에 올려 친척분들과 그리고 가신 분들과 함께 나눠 먹어도 제 값어치는 다하리라 봅니다. 더구나 그 사과 한 알을 위해 흘린 농부의 땀방울과 그 사과에 담긴 지난 겨울과 올 봄, 여름, 가을의 기운과 햇빛, 별빛, 달빛, 그리고 바람과 땅과 물과 공기와 한 알의 사과를 위해 애쓴 사과나무의 수고로움까지 헤아리며 드신다면 복된 사과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권오석이고요, 사과꽃농원지기인 제 친구 이름은 안용찬입니다.

사과를 사 주실 분들은 저(오전)나 작은나무(오후)로 전화주시거나 전자우편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무래도 그 친구는 사과밭에 반사필름도 깔아야 하고 사과봉지도 벗겨야 하고 또 사과도 따서 굵기대로 선별하고 상자에도 담아야 하니 무지 바쁠 것입니다.


안용찬 : 011-9964-2150 (농협 751081-51-059803 안용찬)

권오석 : 019-268-9436

어린이교육문고 작은나무 : 054-636-9436

권오석의 전자우편 : fiveston@chol.com


2006. 9. 15. 쇠날에 소백산 너른 품에 안긴 풍기에서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모르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선한 이들에게 띄웁니다.

 

 # 알고 지내는 이들이게 이 글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저희에겐 큰 도움입니다.

  선택은 오롯하게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있으며, 그 결과가 어찌 되건 누구에게도 아무런  아쉬움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고맙고 고마울 뿐. 기분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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