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글자 크기

다시 권정생 할아버지

빛나라2006.07.23 23:49조회 수 2162댓글 0

안동 순례 마지막날인 지난 21일. 순례단은 다시 ‘국보’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유형문화재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근대화가 덜된 사람’(염무웅), ‘깊은 산속의 약초 같은 사람’(신경림)이라고 일컬어지는 ‘인간 국보’ 권정생 선생(68)이다.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피재현 시인의 안내를 받아 골목을 따라 가니 마을길이 끊어진 곳에 붉은 슬레이트 지붕의 토담집이 나타났다. 울도 담도 없으니 대문이 있을 리 없다.

순례단의 인기척에 동화작가 권 선생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두툼한 작업복 차림에 털실모자를 쓴 그는 10명이 넘는 순례단 규모(?)에 흠칫 놀라는 듯했다. “스님 혼자서만 오시는 줄 알았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신다 했으면 못오시게 했을 텐데.” ‘이 많은 손님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눈치였다. 선생은 “방이 좁아 들어갈 수 없으니 그냥 여기에 앉으세요”라며 마당의 의자를 권한다.

-작년 3월 지리산을 시작으로 전국 탁발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생명과 평화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도법스님)

“걸어서 전국을 다닙니까.”(권정생 선생)

-많이는 못 걷고요. 하루 15㎞ 정도 걷습니다. 지금까지 대략 6,000㎞를 걸었지요.

“걷는다고 생명이 살아나나요.”

-일단 걸으면서 고민하자는 것이지요. 요즘은 인터넷이나 통신의 발달로 사람들이 잘 소통하는 것 같으나 오히려 옛날보다 단절이 더 심합니다. 만나서 환경, 생명 문제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걸어다니면 누가 일을 합니까.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일할 농민이 더 필요합니다.”

-저도 줄기세포를 만든 황우석 교수보다 농민들의 삶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사람들이 대접받지 못하고 있지요. 바로 오늘날의 농촌과 농민들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오히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꾸 문제가 생깁니다. 말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스님처럼 사람들과 만나 얘기할 게 아니라 다소곳이 시골에 내려와 일하면 됩니다. 정 걸어야 한다면 스님 혼자 걸으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하면 되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두 선생님처럼 살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게지요. 혼자 어렵기 때문에 여럿이 함께 할 일을 모색하는 겁니다.

“다들 고향이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처럼 고향에 살면 쫓겨납니다.

“쫓아내도 꿋꿋이 나 여기 살겠다 하면 더이상 어쩌지 못하지요. 저는 위대한 사람이 없는 세상이 훌륭한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마더 테레사 수녀는 수많은 불쌍한 사람들이 있어 훌륭하게 됐지요. 간디는 영국인 침략자들이 만든 것이고. 말없이 착하게 살아야 하지요. 우리 동네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전에 이현주 목사가 찾아왔는데, 그분에게도 허공에 떠도는 말 그만하고 농사지으라고 했어요. 농사질 힘이 없으면 마당에 텃밭이라도 가꾸라고.”

-선생님 말씀대로 말보다 실천을 중시하는 곳 중의 하나가 절집입니다. 그런데 그속을 들여다보면 조작이나 허위의식이 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만 말을 만들어요. 자연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말하셨어요. ‘저 뜨거운 태양 속에 있는 감이 언제 뜨겁다고 하더냐’고. 어머님도 평생 덥다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방은 따뜻하십니까.

“당연히 춥지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게 살아야 하는 게 사람의 도리이지요.”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농사짓는 얘기에 이어 골프장 건설로 인한 환경파괴 문제에 이르러서는 권선생은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골프장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는 “골프장 건설을 막지 못한 안동시민들을 더이상 보기 싫다”고 말했다.

한때 교회 종지기 생활을 하며 신앙에 몰두했던 권선생과 스님은 종교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사는 방식이나 철학에서 좀처럼 합의를 보지 못한 두 사람은 종교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두 사람은 대화 중 농촌과 농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피폐화되는 농촌을 안타까워했다. 권선생은 “15년 전만 하더라도 집앞 개울에서 송사리가 살고 건너편 산에는 수달이 살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살지 못한다”고 전했다.

생전 처음 만난다는 두 사람. 자연과 생명과 삶과 인간에 대해 두루두루 끝없는 얘기를 풀어냈다

    • 글자 크기
한가위 사과 사이소! (by 파랑새) 공부방 일기 (by 빛나라)

댓글 달기 WYSIWYG 사용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정렬

검색

정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