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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일기

빛나라2006.07.04 16:36조회 수 2513댓글 1

 

게시판이 좀 썰렁해서.....

제목 : 금반지

초등학교 입학 즈음,

맨날 학교나 놀이터에서 노느라 저녁까지도 오지 않아 찾으러 다녔던 3, 4월과는 달리

요즈음에 1학년인 재용, 준영, 민지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놀지 않고 곧바로 공부방으로 옵니다.

한참 동안 늦게 온다고 야단맞고 급기야는 발바닥까지 맞기도 했었습니다.

곧장 오기로 3번 이상 약속하고 그래도 늦으면 발바닥을 맞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젠 학교생활과 공부방 생활이 익숙해지고 생활에 안정을 찾은 것같아 마음이 놓이고

아이들을 바라보면 한없이 즐겁습니다. 참으로 예쁩니다.

이사야서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라고 하신 말씀이 깊이 새겨집니다.

또 우리 부모님들께서도 자식인 우리들에게 그리하셨을 것입니다.

 

그냥 오기만 해도 예쁜 녀석들이 이젠 우리를 감동시키기까지 합니다.

지난 12일 월요일에 삼광초등학교에서 '알뜰시장'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1학년 녀석들은 가방을 메고 방바닥에 쓰러지며

'아이구, 가방이 무거워서 힘들어요!' 하면서 들어옵니다.

그런데 오늘은 준영이가  '수녀님, 선생님!' 하고

큰소리로 외치며 들어와 재인샘, 루시아 수녀님,

그리고 저의 손가락에 금색반지를 끼워줍니다.

"어어, 준영아, 반지 어디서 났어?"

"알뜰시장에서 수녀님 줄려고 샀어요." 

"그래, 얼마 줬는데?"

"100원이요!" 그리고는 "내꺼는 팔찌예요." 하면서 '형광팔찌'를 보여줍니다.

"전부 100원씩이예요!"

100원짜리 3개면 300원, 겁나게 싼 금색반지.....

300원보다, 금반지보다 훨씬 비싼 쬐끄만 준영이의 마음이 너무 크고 예뻐서

준영이를 안아 공중에 띄우며 한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공부방이 옥탑방에 있을 때 3학년이었던 경아가

학교 알뜰시장에서 머리핀을 사다준 기억이 났습니다.

 

한참 후,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는데 1학년 아이들이 옆에서 놀고 있습니다.

볼펜이 필요해 통에서 잡힌 것은 파란 바다색 색연필이었습니다.

연습삼아 하얀 종이에 옆에 있던 준영이의 이름을 '김준영'하고 써보았더니

색깔이 바다처럼 해맑은 준영이 마음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이 쓰인 하얀 종이를 준영이에게 주며

"준영아. 이거 너 가져"하고 내밀었더니

겁나 천진한 목소리로 "아까 반지 줘서 주는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 ^-^ ^-^ ^-^..................

 

준영이는 공부방 앞에서 오토바이로 퀵써비스를 하는 아빠랑 둘이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일, 집 앞에서 아빠에게 야단맞으며 내복만 입고 벌벌 떨고 있길래

거의 강제로 아빠에게 뺏어와 공부방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준영이 아빠는 뜬금없이 웬 아줌마에게 아이를 뺏기다보니 경계의 눈빛을 느추지 않더니

이젠 포기하고 믿어주니 고맙게 생각합니다.

처음에 데려올 때 나이에 비해 아주 작고 여려 부서질 것만 같고 슬슬 눈치만 보더니

이젠 키가 좀 커지고 눈치도 안보고 뽕뽕하게 살찐 준영이의 볼을 보면 신기합니다.

처음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원래 준영이는 말도 잘하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할 줄 아는

독창적인 아이입니다. 글자는 전부 읽을 수 있는데 손으로는 한 자도 쓸줄 모르고 

단지 컴퓨터 게임만을 통해 한글을 깨우친 아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첫째 토요일에 다른 형아들은 모두 게임을 하는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준영이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준영아, 우리는 누워서 텔레비전 보자~~ 이리와.

수녀님이 팔베개 해줄께~~" 텔레비전을 켜며 큰소리로 말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질투심에 불타는 민지가 컴퓨터실에서 나오며 "나도 텔레비전 볼래요" 합니다.

"아니야, 너는 게임 한댔쟎아! 빨리 들어가아~~"

민지를 들여보내고 한참 동안 '짱구는 못말려'를 보다가 준영이에게 물었습니다.

"준영아, 아빠랑 사는게 좋아, 할머니랑 사는게 좋아?"

왜냐면 준영이는 야단치면 '아빠 미워, 아빠랑 살기 싫어'하면서 울었고

또 가끔 주말에 외할머니 집에 가기 때문에 할머니랑 살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빠랑은 같이 사는 거고 할머니집은 그냥 가는 거쟎아요."

참, 대답이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올 정도입니다.

 

아이들 편에서 보면 아무 이유도 모른채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겪는

우리 아이들이 공부방에서만은 편안하고 밝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상처를 지울 수는 없지만 상처 때문에, 상처를 붙들고 거기에 묶여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무척 소중하며 온전히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고,

자기 모습 그대로 꽃처럼 활짝 피어나 자유로운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하느님이 된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꽃과 나무처럼 식물을 가꾸는 것과 같습니다.

햇빛과 공기, 물이 고루 정성스럽게 뿌려지면 줄기도 튼튼하고 잎도 무성해져

저마다의 모습대로 예쁜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사랑과 애정, 정성을 쏟으면 쏟을수록 아이들의 몸과 맘이 졸라 눈부시게 자라납니다.

 

선하신 주님, 제게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그들을 섬기게 하소서!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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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2006.7.6 10:22 댓글
    아이들을 바라보는 수녀님의 눈길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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